한국의 자존심이라 불렸던 TV 시장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TV 종주국’으로 불렸던 대한민국의 거실과 안방마저 중국산 TV가 빠르게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세계 TV 출하량에서 중국이 처음으로 한국을 앞질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장의 주도권이 서서히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서울의 대형 가전매장 TV 코너에서는 삼성과 LG의 프리미엄 제품 사이로 생소한 중국 브랜드들이 점점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특히 중저가 시장에 집중하던 중국이 이제는 대형 화면과 고화질의 프리미엄 TV 시장까지 넘보고 있어, 국내 업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가격이 반값” .. ‘가성비’ 무기로 소비자 사로잡은 중국 TV
중국 TV의 최대 무기는 단연 ‘가격’이다. 같은 크기와 사양을 기준으로 할 때, 중국산 TV는 한국산의 절반 수준에서 판매되고 있다. 실제로 한 중국 브랜드의 65인치 LED TV는 240만 원대에 판매 중인데, 비슷한 크기의 삼성이나 LG 제품과 비교하면 50% 이상 저렴하다.
가격 경쟁력에 소비자들도 서서히 중국 TV를 선택하는 분위기다. 누리꾼들도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솔직히 TV는 3~4년 쓰다가 바꾸는데, 가성비 따지면 중국 제품이 훨씬 낫다”, “옛날처럼 ‘싼 게 비지떡’이 아니라 진짜 기술이 따라잡힌 것 같다”, “AS만 확실하면 나도 중국산 살 것 같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서울 지하철 광고까지 점령…한국 TV 4년 연속 점유율 하락
중국 TV의 공세는 단순히 제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주요 지하철역에 중국 TV 브랜드 광고가 크게 걸려 눈길을 끌고 있다. ‘같은 화질, 반값 가격’이라는 문구가 소비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려는 전략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시장 점유율에서도 중국의 상승세는 뚜렷하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TV 출하량에서 중국 업체들이 31.3%를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한국(30.2%)을 앞질렀다. 매출 점유율에서도 한국 브랜드들은 4년 연속 하락세를 보인 반면, 중국 브랜드들은 지속적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본의 가전 명가 파나소닉마저 자국 시장에서 중국 제품에 밀려 TV 사업 철수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국 TV의 공습’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삼성·LG, ‘프리미엄 전략’만으로 버틸 수 있을까?
현재 삼성과 LG는 초고화질 OLED와 QLED TV를 앞세워 프리미엄 시장에서 우위를 지키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 TV의 품질이 빠르게 향상되면서, 가격만 앞세우는 수준을 넘어섰다”며 “지금처럼 프리미엄 전략만으로는 시장 방어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국내 가정에서도 “이 정도면 중국 TV 사도 되겠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한국의 자존심이었던 거실과 안방 TV 자리를 중국산에 내주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TV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한국 브랜드들이 ‘가격-성능-서비스’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 나갈지가 향후 경쟁의 승패를 가를 핵심이 될 전망이다.